[210311]호시노 아카리는 그 여름을 기억한다

“어쩐지 소란스럽다 싶더라, 불꽃놀이를 하나봐.”
“직접 가서 못 보는건 아쉽지만 한가하게 집에서 보는 것도 좋은거 같아.”
토요일 저녁, 드물게 공연스케줄이 없는 주말 아카리는 토아와 함께 베란다에서 근처 공원에서 열리는 불꽃축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가자하면 토아는 분명 싫은 내색없이 공원으로 갈 채비를 마치겠지만 오늘은 별로 그런 기분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집에서 편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여유를 보내고 싶은 날이었다.
부검의인 토아도 항상 바쁘게 일을 하고 있으며, 그녀또한 주말평일 관계없이 스케줄에 맞춰 일을 하는 배우이다보니 주말내내 함께 보낼 수 있는 날은 몹시 귀했다. 어딘가 여행을 가서 휴일을 보내거나 데이트를 하는 방법도 분명있지만 불과 어제까지만해도 둘다 자정이 다되서야 귀가하는 강행군을 펼쳤기때문에 가끔은 이렇게 집에서 보내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 둘만 있음 되는걸로 합의를 보게된 것이다.
저녁을 먹고, 토아는 제 몫의 아메리카노와 우유를 가득 부은 아카리 몫의 라떼와 함께 며칠전 사온 한입 크기의 애플파이를 접시에 담아서는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아카리에게 건냈다. 간단한 고마워라는 감사인사와 함께 고개를 올려다 본 하늘에 수놓이는 번쩍이는 불꽃놀이는 바로 옆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에 그대로 비치고, 아카리는 그것이 몹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 처럼 내 마음을 빛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우연이네 나도 마찬가지야, 아카리.”
‘사랑해.’ 그 말을 덧붙이며 시즈루 토아는 제 옆의 연인에게 입을 맞추고는 작게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늘상 있는 사랑의 표현이자 반응이었다. 흘러 넘치는 애정표현과 그것에 대한 답례, 그리고 그런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다는 어떤 만족감에서 흘러나오는 고양이의 퍼링과도 같은 행위였다. 마치 입을 맞춘 포상으로 저도 같은 것을 바란다는 듯 그는 이마를 맞대고 한참을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카리는 속으로 ‘어쩜 이렇게 알기 쉬운 사람이 있을까?’ 라고 중얼거리며 그가 한듯이 눈을 감고 입술을 포개었다.
 안타깝게도 금방 떼어내려던 입술은 그녀의 연인이 아랫입술을 물어 떼어낼 수 없었다. 갑작스런 통증에 아카리가 입을 벌리면 늘 그랬듯이 토아의 혀가 밀고 들어와 치열을 훑고 놀라서 얌전히 자리하고 있던  아카리의 혀를 찾아내 맞닿는 점막을 집요하게 비비었다. 손을 잡고는 손등의 뼈를 손끝으로 매만지던 것과도 같은, 마치 유혹하는 것만 같은 선정적인 스킨십이었다. 맞닿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입천장을 희롱하고, 그러면서도 아카리가 늘 숨이 차서 그만하고 싶다고 자신을 밀어내는 핑계조차도 못하게 할 작정인지 영악한 그는 각도를 바꿔가며 부러 숨쉴 틈을 만들어주었다. 호흡을 내쉬며 섞이는 한숨소리에는 욕정이 가득했고 끈적거렸다. 그저 내쉬는 호흡인데도 열기를 머금은 것 처럼 뺨이 달아오르는게 느껴졌다. 타액으로 미끌거리는 입술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허리와 목을 바치고 있던 손은 그가 만족할 때까지 힘이 빠지지기는 커녕 바르작거리는 그녀를 더 단단히 옭아맸다.
아카리는 결국 호응하듯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토아의 가슴팍에 두 팔을 감았으나 아무리봐도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듯 필사적으로 나뭇가지에 매달린 아기 새같은 모양새였다. 그는 간신히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잠시 입술을 떼고는 붉어진 뺨에 입을 맞추곤 다시 키스를 이어갔다. 그렇게 그가 만족할 때 까지 이어지던 입맞춤이 끝이 났을 무렵은 피날레를 장식하듯 금색 불꽃이 터져 시야가 새하얘졌을 때 였다. 그는 시야가 어찌되던 닿아있는 아카리의 체온이 더 소중했으나 아카리는 갑작스러운 눈꺼풀 너머의 시야가 궁금했는지 그를 밀쳐내곤 하늘에 눈길을 쫓았다. 한번 터진 불꽃은 그대로 사그라지지 않고 여러번 제 반짝임을 밤하늘에서 뽐내다 빛을 감추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갑작스럽게 멈춘 애정행각이 아쉬운 듯 그는 몇번 방금 전만해도 한몸 같이 붙어있던 그녀의 입술을 쪼듯 소리를 내며 입을 맞추었다. 마치 자신에게 집중하란듯이.
“예쁘네.”
그러거나 말거나 아카리는 감은 팔을 풀지 않고 수놓았던 불꽃의 사라지는 잔상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런 날이었다. 별거 아닌 사소한 날 이었음에도 돌이켜보면 의미가 생기는 그런 날이었다.

날씨는 맑고, 무더운 날이었으나 바람이 시원해서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 틀어올리면 목 뒤를 바람이 간질여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던 날. 공부하는 대학생들로 가득한 평범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카리는 태블릿PC로 감상문을 제출해야하는 고전 영화를 보고있었고 맞은편에서 토아는 두꺼운 전공원서를 읽으며 필기를 하고, 검색을 하는 등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옆자리에 상대방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 관계에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거리에서 두 사람은 테이블 밑으로 서로의 신발이 맞닿은 채로 함께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 두사람이 당장의 해야만 하는 것이 벽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면 서로의 손이 겹쳐져 있었을테지.
“아.”
“왜 그래? 뭐 잊고있던 과제라도 떠올랐어?”
토아의 짧은 탄식에 나는 끼고있던 이어폰을 빼고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런 그를 바라보면 토아는 별거 아니라며 보란 듯이 비워진 컵을 흔들었다.
“한 모금 마시려고 했는데 벌써 다 마셔버렸지 뭐야. 아카리도 목마르지? 마실 거 한 잔 더 주문할까?”
“나는 괜찮아. 아직 절반이나 남아있는걸? 어제도 시험준비 때문에 많이 못 잤다며 너무 커피만 마시지 말고.”
내가 웃으면서 이미 식어버린 밀크티를 한모금 마시면 토아는 그럼 배고프면 곤란하니 샌드위치도 같이 주문하겠다고 계산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늘 다정한 언동, 고르고 골라 예쁜 말 만을 말하는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은 늘 따뜻하고 즐거워서 겨울에는 추위를 느낄 새가 없었고 그의 미소를 보면 이 여름이 청량해진것만 같았다. 영화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20분, 부지런히 감상문을 적는다면 저녁에 열리는 여름 축제에 함께가자고 운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눈 앞의 그가 너무 지쳐보인다면 그대로 삼켜버릴 제안이지만. 늘 그랬듯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겪을 수 있길 바라며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영화 속의 두사람은 서로의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고 있었다. 다정하게.
부지런히 자판기를 두들기며 빠르게 한 자, 한 자 말들을 이었다. 어떤 일탈과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과 하지만 돌아가야하는 시간. 끝이 있는 감정은 얼마나 슬픈거지? 지속되지 않기에 슬픔도 온갖 부정적인 것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음에도 행복한 시간에 온점을 찍는 것은 얼마나 아쉬운 일 인걸까. 나는 솔직한 심정을 백지에 적어갔다. 유리 너머로 비치는 햇빛이 잦아 들어가는 것을  눈치도 못 채고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이고 감상문의 끝을 찍으면 너머에는 노을지는 햇빛에 나를 바라보는 토아가 보였다. 주황빛에 반짝이는 붉은 머리카락은 샛빨간 과실처럼 강렬하게 반짝였고 청색이 은은하게 빛나던 눈동자에는 황색을 머금어 이질적이면서도 오히려 그것이 스포트라이트 밑에 서있는 배우같았다. 그래서 나는 온 세상이 너를 비추는 조명같았다고 생각했다.
“끝났어? 돌아갈까?”
네가 너무 집중을 하고는 오늘 안에 끝내고 말겠다는 듯이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구경하게 되어버렸지 뭐야? 라며 토아는 턱을 괸 채로 눈꼬리를 가늘게 접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자리를 보면 오늘치의 공부는 끝이라도 난건지 책은 가지런히 가방에서 쉬고 있었다.
“빨리 한다고 한건데, 누가 더 빨리 과제 끝낼 수 있나에선 토아를 이기기엔 한참 멀었나봐.”
“나는 아카리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즐거웠는걸?”
그 광경에 나는 미안함을 숨기지 못하고 미간을 찡그렸다. 오늘은 빨리 끝내고 내가 기다려주고 싶었는데 그는 늘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것을 이루는 놀라운 사람이었다. 학창시절에도 분명 같이 놀았는데도 성적은 훨씬 상위였고 동아리를 기다리며 먼저 과제를 끝내는 늘 부지런한 사람.
“나도 할 거 끝냈어. 교수님에게 과제도 제출했고 이번주 주말은 자유! 그런 의미로 같이 축제 보러갈래? 우리 늘 함께 마지막까지 불꽃놀이를 보고 헤어졌잖아.”
밝은 목소리로 급히 짐을 챙기며 그에게 의사를 물어보면 토아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짐은 차에 실어두고 축제를 보러가자고 말했다.
“사실은 나도 아카리랑 같이 저녁에는 놀고 싶어서 부지런히 할 일 끝냈어.”
“우연이네, 내가 졸업준비하느라 많이 바빴으니까 그리고 계속 바쁠거 같으니 시간이 맞는 날에는 토아랑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기뻐, 아카리. 나도 오늘 아카리랑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어.”
내 말에 그는 웃으면서 가게를 나섰다. 냉기가 감돌던 카페와 달리 밖은 여름 그 자체였으니 훅 피부를 감싸는 그 열기라고 그의 다정한 말에 뺨이 달아올랐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여름의 더위인거라고 생각했다. 맞잡은 두 손은 따뜻했고 그 온도가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저무는 해를 뒤로 하고 노점을 걸으면 고등학교때 거닐던 야시장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는 사격이나 요요를 건지는 것보다는 그 분위기에 함께 먹는 음식과 피날레에 집중하는 나이라 어린 아이들의 뜀박질 사이에서 우리는 유유히 걸었다. 함께 집에서 해먹는 것도 맛있지만 철판에서 누군가가 구워주는 야키소바를 먹는것도 가게에 들어가 앉아서 주문하면 구워져 나오는 꼬치 요리를 밖에서 서서 먹는 등 오히려 번거롭고 특별할게 없지만 붉은 등 아래에서 한다는 그 특이성이 즐거움을 자아냈다. 즐겁게 밥을 먹고 서로 사지도 않을 가면을 가리키며 이건 네가 어울리네 저건 네가 어울리네 하며 이야기하다보면 해는 지고 빛에 가려져있던 별들이 하늘을 수 놓고 있었다.
“곧 시작하겠네.”
“그러게, 그때도 그 다음해도 토아랑 본 불꽃놀이가 무척 즐거웠는데 나는 이렇게까지 길게 함께 하늘을 올려다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토아의 말에 나는 당시의 내 감상을 말했다. 옆 자리의 아파서 1년 유급한 잘생긴 선배이자 이제는 동급생인 사람. 몹시 조용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종이 울리고 제 자리에 앉으면 늘 옆자리의 그는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그저 같은 반의 남학생. 당신은 그때 내게는 그저 눈길이 가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는 길가의 장미 덤불 속 자리 한 붉은 한송이처럼 평범하게 어여쁜 친구였다고.
“옆자리의 토아는 늘 우아했지. 나와 같은 고등학생이란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하, 그랬었나? 확실히 소란스러운 학급에서 나는 조용한 편이었으니까. 아카리가 있는 반은 늘 소란스러웠잖아.”
“내가 있으면 시끄러웠어? 중학생때는 우리 같은 학년도 아니었잖아. 그런 건 어떻게 들은거야?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쉬는 시간이 끝나고 토아가 내가 말걸어주고 나는 그러면 웃으면서 답하고 그런 시간들이 너무 즐거웠어.”
그러고는 나는 그의 손을 잡고는 펑펑! 소리를 내며 반짝이는 하늘을 감상했다. 은색 꼬리를 남기는 라이징 테일이 연속적으로 터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조합되는 원소에 따라서 바뀌는 색상이라면 결국은 정해진 메뉴얼인건데 어째서 불꽃놀이를 그저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걸까? 정해진 래퍼토리, 레일로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단 20분도 안되어 끝나버리는 불꽃을 보려고 이렇게 모여있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리고 아마 내년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모이겠지. 인간은 늘 그랬다. 끝이 정해진 지속되지 않는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기억으로 하루 한달 그리고 몇년이고 계속 살아가고 있다. 몇년을 봐도 매번 새로운 반짝임을 가슴에 안을 수 있는 것. 나는 이것이 늘 같은 부분에서 똑같은 감정을 느끼면서도 눈물을 흘리고마는 대본 속의 세상과 저 하늘에 펼치는 잠시간의 공연은 그런 점에서 어떤 교집합이 있다고 생각했다.
제 아름다움을 뽐내어 현혹시키는 화려한 하늘을 응시하고 있음에도 그것에 시선을 주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는 그의 눈길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면 그때 그 시절과 같은 표정으로 나를 향해 웃어주는 네가 보였다. 등 뒤로 터지는 백색 조명에 빛난 너는 마치 고등학생 때 그저 네가 나에게 있어 어린 왕자의 장미꽃 한송이가 아니라 지구의 수많은 장미꽃과 다를바가 없던 그 시절과 같이 똑같은 웃음을 지으며 애정이 담긴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너도 나도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니 계속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거구나.
내겐 늘 사랑하는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세상은 넓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은 많았다. 그것이 유년시절의 추억이 담긴 선물이던, 학창시절의 추억이던, 타인에게 받은 애정 또는 긍정적인 감정이던. 모든게 다 녹이슬고 바래져도 떠올리기만해도 웃음 짓게 만드는 보물들. 시즈루 토아 너또한 매일 함께 해도 늘 사랑스럽고, 편하며 너와 함께한 모든 추억이 나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들중 한가지인데 그럼 너도 저것들과 같은 나의 행복일까? 그렇다면, 나는 너를…

“무슨 생각을 하길레 그렇게 날 빤히 보며 웃는거야?”
“그냥 토아는 여전히 토아구나 싶어서.”
모든게 끝날지라도 함께한 기억만은 여전히 사랑스러울 거라고. 토아, 이 밤이 지나면 또 내일이 올거야. 그러면 나는 또 내일 만날 너를 오늘처럼 변함없이 사랑하겠지, 몇번이고.

나는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세계에서 마침표가 존재하는 영원할 사랑에 내 몸을 적셨다. 파도에 밀려든 바닷물에 제 발을 스스로 담듯.